'기록/책'에 해당되는 글 3건
- 2023.01.23 정경수의 <계획 세우기 최소원칙>을 읽고
- 2022.12.19 장 프랑수아 마르미옹의 <내 주위에는 왜 멍청이가 많을까>를 읽고
- 2022.11.28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를 읽고
서론
절망적인 독서량을 고려해서 자기개발서류는 가능하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정말 유명한 책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실제 주장하는 바는 2%, 나머지는 왜 이러한 방법이 좋은지를 설명하는 것에 그치기에 시간을 들여 다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주장만 납득이 된다면 나머지를 전혀 읽지 않아도 아는 것에는 지장이 없을 터이니. 문제는 이를 실천하는 쪽이겠지만 말이다.
대학원생 생활을 하면서 본인의 장기프로젝트 진행 능력이 거의 0에 가까움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성과를 평가할 확실한 metric 이 없고, 중간 평가도 존재하지 않으며 (실험을 배우는 단계에서는 논문도 좋은 metric으로는 기능하지 않는다) , 연구란 것이 어느 수준에서 불완전한 상태로라도 마무리 하지 않으면 끝이 나지 않기에 대학원생이야 말로 뚜렷한 장기 계획 능력이 필수이다. 혹 과거로 돌아가 다시 석박통합과정을 처음부터 시작하게 된다면 온갖 시행착오를 겪더라도 무엇보다 이 능력을 갈고 닦을 것이다.
때문에 조금이나마 문서화된 도움을 얻고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일부는 내가 이미 시험삼아 실행했다가 생각보다 엄청난 효과에 놀라고 있던 것이었고, 일부는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또 일부는 효과가 있을까 의문이 생기지만 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방법들이었다. 이 중 당연하다고 여기는 파트들은 빠른 속도로 스킵하면서 넘겼기에 독서록에 기록한 부분이 그리 많지 않다. 몇몇 내용들을 내 생각들을 추가해서 아래 정리해본다.
계획 세우기
버킷리스트와, 마스터 플랜, 액션 플랜, To Do list를 구분하자.
버킷리스트는 인생 단위로 봐서 이루고 싶은 꿈들을 현실성과는 상관 없이 정한다. 단, 보통 버킷리스트에 쓰는 '스카이 다이빙 해보기' 마냥 가벼운 것들이 아니라 삶의 목적이 될만한 것들로 채운다.
다음은 10-20년 단위의 마스터 플랜을 정한다. 특정 직업을 얻기, 무언가 만들어 내기 처럼 큰, 하지만 현실성이 있는 목표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액션 플랜은 마스터 플랜을 달성하기 위한 길게는 1년 단위의 더 세부적인 목표이다. 논문 쓰기, 책 출간하기 등이 여기 해당된다.
To Do list는 이를 달성하기 위해 오늘 끝낼 수 있는 일들의 목록이다. 논문의 결론 파트 한 문단 작성 등이 여기 해당 된다.
버킷리스트와 마스터 플랜의 조건
종이에 기록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적인 정리가 필요할 때에는 꼭 종이와 만년필을 꺼내든다. 그렇게나 글을 쓰기 싫어하는 학생이었는데 아직까지 생각 정리를 함에 있어서 종이와 펜 이상의 것을 찾지 못했다.
To Do List의 조건
SMART 원칙이라는 것이 괜찮은 기준인 것 같다. Specific, Measurable, Attainable, Relevant, Time-bound
이 중 specific과 time-bound가 내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파트다. 생각보다 스스로 큰 덩이의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너무 크게 To Do List를 잡으며, 여기 걸릴 시간도 너무 낙관적으로 짧게 잡는다. 물론 호프스태터의 법칙이 있듯이 비관적으로 생각하여 길게 잡아도 이보다 오래 걸리겠지만... 메타인지 훈련을 위해서라도 꼭 To Do List 안에는 완성에 필요한 시간을 적어두는 것이 좋다.
Specific To Do List
링피트를 하는 습관을 만드려고 시도했던 것 중에 하나가 To Do List를 아주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운동하기", "매일 링피트 30분을 하기" 이런 것이 아니라 무려 "하루에 한번 닌텐도 스위치 켜기" 였다. '이걸 못할 수는 없지' 수준으로 To Do 를 만들면 양심에 찔려서라도 그 뒤를 할 수 있게 되더라. To Do 를 잘 못지키게 되는 것 같으면 더 세세한 단위로 쪼갤 필요가 있다. 아래는 기억해두면 좋을 말들이라 적어둔다.
소설을 쓰는 것은 밤에 자동차를 운전하는 것과 같다. 당신은 차의 헤드라이트가 비춰주는 데까지만 볼 수 있을 뿐이다. 헤드라이트가 비춰주는 곳까지 달리다 보면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 - E. L. 닥터로우
You solve one probelm and you solve the next one, and then the next. And If you solve enough probelms, you get to come home. - Martian
역산 스케줄링
이것도 어려워 하는 파트 중 하나이다. 특히 상황이 절망적이면 큰 그림을 보려고 하지 않고 자꾸 '그냥 지금 열심히 하자' 수준에서 일을 수행한다. 꼭 액션 플랜을 기억하며 Dead Line을 정하고 이를 기반으로 To Do List를 짜야한다. 짜야 하는데..
전날 밤에 내일 할 일 생각하고 써두기
시험 삼아 시도했다가 엄청난 효과를 봤었는데, 이 책에도 비슷한 내용이 짧게 소개되어 있었다. 전형적인 야행성 인간이라 그런지 아침에는 집중도 안되고 큰 범위의 생각이 어렵다. 때문에 전날에 멍청해진 오전의 자신을 위해 무지성으로 해야할 일들 리스트를 적고, 다음날 졸린 나는 하라는 대로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오전 시간의 효율을 정말 높여주었다. 한가지 특이점은 앱에 기록해두면 잘 쓰지 않고 꼭 종이에 기록해서 아침에 학교에 가며 가져가도록 하는 쪽이 효과가 좋았다는 점이다.
계획 실행하기
계획 실행의 1/3 정도는 계획 수정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결국 계획은 실제 실행 내역과 어그러지게 된다. 그렇게 실제 실행 내역을 보고 계획을 수정하는 일을 계혹 하다보면 애당초 맞지도 않을 계획을 왜 짰나 싶을 정도로 낙담하게 된다. 이것은 과연 효과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계속 계획 수정을 하는 것을 지속해봐야 겠다.
결론
계층적인, 그리고 시간을 정할 수 있는 할일 나누기가 관건인것 같은데 최근 마음에 드는 사이트를 하나 찾았다. 2주 정도 사용을 해보고 마음에 들어 별 기능도 없는 사이트지만 한달치를 일단 결제해 사용해보기로 했다. 사이트는 아래와 같다.
To Do List를 계층적으로 만들 수 있고, 전체적인 일의 흐름도 볼 수 있다. Timeline view가 유료 전용이라 아쉽지만, 일단 대체제를 찾기 전까지는 이 사이트를 사용해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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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표지만으로 책장에 꼽아두었더니 가치를 충분히 수행했던 책이다. 간접적인 방법으로 주변 사람의 멍청함을 당당하게 욕하는 통쾌함과, 주변인들의 다양한 반응을 구경하는 재미, (’이거 나 보라고 꼽아둔거지!’, ‘너도 멍청할 때가 있잖아!’, ‘아니야 이거 분명 저 사람을 멍청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꺼야’) 그리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용의 셋을 챙길 수 있다. 물리적인 책의 존재로 오는 만족감이 있었기 때문에 전자책인 경우 1/5점, 종이책인 경우 4/5점을 주고 싶다.
전반적인 내용은 다양한 저널리스트, 심리학자, 칼럼리스트, 작가 들에게 멍청함에 대한 글을 요청하거나 멍청함에 대한 인터뷰를 요청하고 그 내용을 모은 모음집이다. 제목 때문에 멍청함에 대한 심도깊은 탐구가 있을 것이라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내게 ‘인간의 멍청함’을 연구해보라고 하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할지 감도 못잡을 것 같다. 때문에 내용이 난잡하게 얽혀있고, 멍청함과 관련된 뇌 영역을 이야기하는 글 부터 육식의 멍청함을 이야기하는 글까지 다양한 내용이 통일성 없이 섞여있다. ‘책’이라기 보다는 ‘멍청함을 주제로한 잡지 특별호’ 의 느낌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인들의 글의 비중이 상당히 높았는데, 이들의 문화적 특성으로 보이는 모습을 얼핏 볼 수 있었다. 바로 얼마전 미국인이 쓴 조금은 딱딱한 내용의 책을 읽어서인지 유독 많은 글들이 그림, 소설 등으로부터 내용전개를 시작하는 것처럼 보였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내용은 멍청함을 다양한 방식으로 욕하고 ‘그들을 구제해줄 수 없으니 피해라’ 식의 결론을 내리는 터라, 소개된 그림이나 책들을 찾아보는 쪽이 더 즐거웠던것 같다. 심리학과에 있으면서 이름을 한번쯤은 다 들어본 유명한 교수들도 인터뷰가 있었는데, 과학자답게 질문이 충분히 세부적이지 않으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이런 결과도 있고 아닌 결과도 존재합니다.” 식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잡지를 읽는 느낌으로 읽어야 온전히 책을 즐길 수 있을것 같다.
그나마 진지함이 느껴졌던 글은 세바스티아 디게 교수의 글로 멍청함의 근원을 철학자 해리 프랑크푸르트의 말을 인용하며 멍청함은 “진실에 대한 관심부재”에 기인한다고 이야기 했다. 내가 생각해도 지능 부족으로 진실을 이해할 여력이 되지 않는 것을 넘어, 진실 그 자체에 관심이 없거나, 진실 여부와는 상관없이 다른 것에 목적이 있는 경우에는 분명 행동이 멍청해지는 것 같다. 이렇게 전문성이나 지능과는 상관 없이 “관심의 부재”로 인해 누구나 멍청해 질 수 있기에, 대다수의 글들에서 ‘누구나 다 멍청해질 수 있음을 잊지 말고 자기 비판적인 사고를 해야한다.’ 고 결론을 내린다. 안타깝게도 어떤 글도 미래에는 멍청함이 줄어들 것이라는 낙관적인 예상을 하지 않는다. 인류는 결국 멍청함과 함께 해야만 하는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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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불가지론을 지향하는 과학자로서 (제목과는 다르게 아이러니 하게도) “종교 서적”으로 분류된 이 책을 스스로 읽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단지 최근에 읽은 Ray Dalio의 <Principle>에서 이 책을 인용했다는 점과, 종교 최대 지도자가 종교를 “넘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 신경쓰여서 책을 잡아들게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내가 자기개발서에 기대하는 수준을 넘기지는 못했으나, 여러가지 생각할 점들을 주었다는 것과, 얇은 책 두께 때문에 읽은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종교의 몰락.
종교에는 신에 의해 진실이 보장된 도덕이 있고, 사후세계에서의 심판이든 다음 생에서의 삶이든 옳음을 강요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화로 종교간의 의견 충돌이 보이기 시작했고, 종교들이 제시하던 도덕 또한 ‘상대적 진실’에 불과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종교는 예전처럼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순기능에 비해서 점점 비대해지는 종교에 반해서 생겨난 과학의 등장으로 종교의 가치는 점점 하향세를 걷고 있다. 확실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과학을 하는 하는 내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종교는 결국 일부 쇠퇴하리라고 생각한다.
마음챙김은 그러면 이제 누가 어떻게?
문제는 종교의 몰락이 아니라 종교가 원래 수행하던 일을 어떤 객체가 이어서 수행을 하냐는 것이다. ‘마음’이든, ‘내적 가치’든, ‘자비’든 인간의 온전한 정신상태는 인류에게 단 한번도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단지 과거에는 종교가 이러한 일들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었으나 종교의 몰락과 함께 마음챙김(이 단어를 매우 싫어하지만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그대로 사용한다)을 담당할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다. 이 책에서 마음챙김의 중요성을 첫 챕터에서 지적을 하는데, 달라이 라마도 종교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종교가 원래 해오던 일들까지도 함께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종교를 “넘어” 인 것이다. 역자의 후기를 읽어보면 달라이 라마가 어느날 갑자기 이러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꽤 오래전부터 종교 그 이상의 가치를 지켜야한다고 역설해온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불교가 종교의 많은 구성 요소를 자기 수행과 온전한 정신상태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가장 먼저 종교의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인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신교에 익숙한 나로서는 단 한번도 종교의 약체화가 인류에게 이러한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확실히 다양한 가치가 자유와 다양성이라는 이름하에 수용이 강제되고 있고, 더이상 흑백논리적 도덕적 판단이 어려워지는 현재에 있어서 설사 그것이 상대적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기준점이 되어줄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무엇이 옳고, 우리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어디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달라이 라마의 대책
그렇다면 어떤 객체가 기존의 종교가 맡아서 하던 마음챙김의 역할을 대신 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확실히 제시해주고, 좀 더 일관되고 올곧은 현세적 도덕관을 제시해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21세기에 가장 강력한 ‘종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책의 2/3을 할애하는 부분은 달라이 라마의 대책이다. 안타깝게도 달라이 라마 본인에게 가장 익숙한 불교적 방법, 스스로의 수행과 명상을 통한 자비에 기반한 마음챙김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대상이 없어지는 만큼 ‘각자도생으로 자기 마음은 자기가 챙기자’의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겠으나, 뻔한 자기 개발서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앞섰다. 아무리 자애로운 마음이 무엇인지, 절제와 덕이 무엇인지를 설명해도 달라이 라마 본인의 말처럼 이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이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방향을 잡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으나, 스스로 깨닫고 행동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들에 대한 설명만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졌다. 그나마 다루는 내용의 무게에 비해 얇은 두께로 그가 이런 한계를 인지하고 최대한 ‘절제’를 해서 글을 썼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총평
전혀 관심을 주지 않을 법한 주제와, 다른 종교의 사고관을 간접적으로 나마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었다. 특히 종교의 부재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이 책을 읽고 달라이 라마의 염려에 확실히 동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접해본 종교인들은 본인의 ‘옳음’에 심취되어 있거나, 다른 분야에 대한 무지로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달라이 라마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학문을 탐구하고, 자신의 종교와의 공통점을 찾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종교 그 이상의 메타적인 시각에서 인류를 조망하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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