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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2.11.28 달라이 라마의 <종교를 넘어>를 읽고

서론

종교를 가지고 있지만 불가지론을 지향하는 과학자로서 (제목과는 다르게 아이러니 하게도) “종교 서적”으로 분류된 이 책을 스스로 읽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단지 최근에 읽은 Ray Dalio의 <Principle>에서 이 책을 인용했다는 점과, 종교 최대 지도자가 종교를 “넘어”라는 표현을 썼다는 점이 신경쓰여서 책을 잡아들게 되었다. 전체적으로는 내가 자기개발서에 기대하는 수준을 넘기지는 못했으나, 여러가지 생각할 점들을 주었다는 것과, 얇은 책 두께 때문에 읽은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종교의 몰락.

종교에는 신에 의해 진실이 보장된 도덕이 있고, 사후세계에서의 심판이든 다음 생에서의 삶이든 옳음을 강요하는 강력한 힘이 존재한다. 그러나 세계화로 종교간의 의견 충돌이 보이기 시작했고, 종교들이 제시하던 도덕 또한 ‘상대적 진실’에 불과하다는 점이 드러나면서 종교는 예전처럼 힘을 쓰지 못하게 되었다. 또한 순기능에 비해서 점점 비대해지는 종교에 반해서 생겨난 과학의 등장으로 종교의 가치는 점점 하향세를 걷고 있다. 확실하지 않으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과학을 하는 하는 내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종교는 결국 일부 쇠퇴하리라고 생각한다.

 

마음챙김은 그러면 이제 누가 어떻게?

문제는 종교의 몰락이 아니라 종교가 원래 수행하던 일을 어떤 객체가 이어서 수행을 하냐는 것이다. ‘마음’이든, ‘내적 가치’든, ‘자비’든 인간의 온전한 정신상태는 인류에게 단 한번도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단지 과거에는 종교가 이러한 일들의 일부를 담당하고 있었으나 종교의 몰락과 함께 마음챙김(이 단어를 매우 싫어하지만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 그대로 사용한다)을 담당할 무언가가 사라지고 있다. 이 책에서 마음챙김의 중요성을 첫 챕터에서 지적을 하는데, 달라이 라마도 종교의 한계를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종교가 원래 해오던 일들까지도 함께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때문에 이 책의 제목이 종교를 “넘어” 인 것이다. 역자의 후기를 읽어보면 달라이 라마가 어느날 갑자기 이러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라 꽤 오래전부터 종교 그 이상의 가치를 지켜야한다고 역설해온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불교가 종교의 많은 구성 요소를 자기 수행과 온전한 정신상태에 초점을 두고 있기에 가장 먼저 종교의 부재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인식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개신교에 익숙한 나로서는 단 한번도 종교의 약체화가 인류에게 이러한 영향을 미치리라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확실히 다양한 가치가 자유와 다양성이라는 이름하에 수용이 강제되고 있고, 더이상 흑백논리적 도덕적 판단이 어려워지는 현재에 있어서 설사 그것이 상대적 진실이라고 하더라도 기준점이 되어줄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 무엇이 옳고, 우리가 어떤 정신을 가지고 어디에 더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

 

달라이 라마의 대책

그렇다면 어떤 객체가 기존의 종교가 맡아서 하던 마음챙김의 역할을 대신 해줄 수 있을까.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확실히 제시해주고, 좀 더 일관되고 올곧은 현세적 도덕관을 제시해주며,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해줄 수 있는 무언가가 나타난다면 그 형태가 어떻든 간에 21세기에 가장 강력한 ‘종교’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책의 2/3을 할애하는 부분은 달라이 라마의 대책이다. 안타깝게도 달라이 라마 본인에게 가장 익숙한 불교적 방법, 스스로의 수행과 명상을 통한 자비에 기반한 마음챙김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인류를 하나로 묶어주는 강력한 대상이 없어지는 만큼 ‘각자도생으로 자기 마음은 자기가 챙기자’의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겠으나, 뻔한 자기 개발서의 흐름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아쉬움이 앞섰다. 아무리 자애로운 마음이 무엇인지, 절제와 덕이 무엇인지를 설명해도 달라이 라마 본인의 말처럼 이는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행동의 문제’이다.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방향을 잡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했으나, 스스로 깨닫고 행동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내용들에 대한 설명만이 마지막 페이지까지 이어졌다. 그나마 다루는 내용의 무게에 비해 얇은 두께로 그가 이런 한계를 인지하고 최대한 ‘절제’를 해서 글을 썼다는 점을 느낄 수 있었다.

 

총평

전혀 관심을 주지 않을 법한 주제와, 다른 종교의 사고관을 간접적으로 나마 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충분히 읽을 만한 책이었다. 특히 종교의 부재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단 한번도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으나, 이 책을 읽고 달라이 라마의 염려에 확실히 동의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접해본 종교인들은 본인의 ‘옳음’에 심취되어 있거나, 다른 분야에 대한 무지로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달라이 라마는 확실히 다른 것 같다.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학문을 탐구하고, 자신의 종교와의 공통점을 찾고, 더 나아가서 자신의 종교 그 이상의 메타적인 시각에서 인류를 조망하는 것이 확실히 느껴졌다.

Posted by Knowbl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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